6월의 ‘6·25전쟁영웅’ 장철부 육군 중령…독립군 유격대장 출신

올해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독립군 유격대장 출신인 장철부 육군 중령이 선정됐다.


보훈처가 선정한 장철부 소령은 한강전투, 공주전투 등 각종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청송전투서 영웅다운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보훈처는 29일 올해 6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장철부 육군 중령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 국가보훈처에서 선정한 6월의 6·25전쟁영웅’ 장철부 육군 중령 (사진=국가보훈처 블로그)

장 중령은 192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1944년 일본 주오대학교 법학과 재학 중 일본군 학도병으로 끌려가 중국 전선에 투입됐으나, 일본군의 일원으로 싸워야 하는 치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2번의 탈출을 시도한 끝에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망명했다.


이후 자신의 일생을 조국의 독립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본명 김병원을 장철부로 개명한 후 한국광복군에 입대, 제1지대 제1구대 유격대장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


또한 장 중령은 군사방면에서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김구 선생의 추천으로 중국 황포군관학교 기병과에 입교하여 졸업했다.


귀국 후 1948년 육군사관학교 5기로 임관한 그는 계속 학교에 남아 중대장, 전술학 교관 등을 지냈으며, 독립기갑연대 창설과 함께 기병대대장으로 근무하다가 6·25전쟁을 맞게 됐다.


당시 소령이었던 그의 기병대대는 경기도 의정부로 출동해 수색작전을 전개한 후 한강 이남으로 철수해 진지를 구축했고, 6월 29일 한강을 도하하는 북한군 수백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또한 7월 11일에는 충남 공주에서 북한군 제6사단 1개 대대를 섬멸하는 등 각종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8월 4일 경북 청송지구에서 청송-경주로 진출하려는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다 중상을 입고도 최후까지 총격전을 벌였던 장 중령은, 대대 지휘소가 점령되기 직전 “포로가 되는 수치를 당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며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29년의 삶을 마감했다.


정부에서는 그의 전공을 기려 중령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이어 2002년에는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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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