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자주독립의 꿈 담긴 '대한제국 황궁 덕수궁' 온라인 전시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는 당초 15일부터 11월 15일까지 덕수궁 석조전에서 개최하려고 했던 '대한제국 황제의 궁궐' 특별전을 온라인 전시로 전환해 22일부터 '다음 갤러리(카카오 갤러리)'에서 1차 개막을, 10월 중순에는 덕수궁관리소 누리집과 문화재청 유튜브에서 2차 개막하기로 했다. 2차 개막에는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사이버 공간에서 실제 전시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되면 하루 400명 이내의 예약 제한 관람으로 실제 전시실인 덕수궁 석조전도 개방할 것이다.

덕수궁관리소에서는 2018년에 대한제국역사관의 3개년 기획전시로 '황제의 의衣·식食·주住'를 기획해 2018년 10월에 '의衣'를 주제로 한 '대한제국 황제 복식', 2019년 9월에 '식食'을 주제로 한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특별전을 개최했으며, 이번 전시는 그 마지막으로 '주(住)'를 주제로 '대한제국 황궁의 건축'을 다루고 있다.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의 영역 변화와 전통건축과 서양식 건축이 함께 세워진 궁궐건축의 변화를 통해 대한제국이 겪은 근대 역사의 부침,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내세운 구본신참(舊本新參, 옛것을 유지하며 새것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임)의 실체를 조명했다.

전통건축과 서양 건축이 교차한 덕수궁에는 특이하게도 전통 건축물인 중화전과 서양식 건축물인 석조전, 이렇게 두 개의 정전(正殿)이 있는 궁궐이다.

2층 지붕을 가진 중화전은 1902년에 덕수궁의 정전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후 1904년 대화재로 불에 탔지만, 석조전 공사를 중단하면서까지 시급히 재건해 1905년 지금 모습으로 중건됐다.

그런가 하면, 1897년 건축 계획을 수립해 1900년 공사를 시작한 석조전은 국운이 기운 후에도 영향받지 않고 결국 1910년 완공된 건물이다.

중화전과 석조전, 이 두 정전은 대한제국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과 제국이 꿈꿨던 근대국가의 모습, 자주독립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전인 중화전의 어좌와 석조전의 황제 서재와 침실, 황후의 거실과 침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많은 관람객이 덕수궁을 다녀가지만 중화전 내부는 관람 불가 구역이고, 석조전의 황제와 황후의 서양식 생활공간은 사전예약자에 한해 제한된 인원만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인 만큼 더 의미가 있다.

중화전의 어좌와 어좌를 둘러싼 나무 병풍인 곡병(曲屛)은 황제의 위엄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가치의 핵심이다. 이 어좌와 곡병은 현존하는 유물 중 제작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기도 하다.

1906년에 제작된 '경운궁중건도감의궤(慶運宮重建都監儀軌)'에는 어좌와 곡병 그리고 어좌와 좌탑을 둘러싼 당가의 형태와 부재의 정확한 명칭이 기록돼 있는데, 현재의 실물과 일치한다.

곡병은 9개의 용두(龍頭, 용머리 모양의 장식기와)를 가지고 있고, 청판(廳板, 곡병의 면을 이루는 판)에는 용, 모란, 초엽 등 다양한 문양이 투각돼 있다.

용상은 6개의 용두를 가지고 있으며, 판의 무늬는 곡병과 같다. 어좌가 올라가 있는 좌탑은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고, 당가의 천장에는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두 마리의 황금룡이 살아 있는 듯 꿈틀대며 마주 보고 있다.

대한제국 황궁의 서양식 생활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현존하는 유일의 유산이다.

실내 장식은 2014년 석조전을 복원할 때 설치한 것이지만, 당시 도면과 사진을 기반으로 고증해 재현한 것이며, 석조전이 완공됐을 때 영국 메이플사에서 납품한 가구들도 아직 남아있다.

이외에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공사관에서 고종이 거처했던 거실 사진과 돈덕전 내의 침실 사진 등을 공개해 대한제국기 황궁의 서양식 생활공간을 짐작해볼 수 있게 전시를 구성했다.

이번 전시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서경(평양) 풍경궁(豐慶宮)'의 사진과 풍경궁에 봉안한 고종과 순종의 초상화를 옮기는 반차도班次圖(의궤의 행렬 그림), 그리고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병원으로 개조됐던 도면들이 소개된다.

이 중 사진(정전인 태극전(太極殿), 정문인 황건문(皇建門))과 도면은 일반에 최초로 소개되는 자료들이다.

대한제국이 건설한 또 하나의 황궁인 풍경궁은 기자조선의 터전인 평양에 제국의 두 번째 수도를 건설하겠다는 고종의 강력한 의지로 1902년 평양부(平壤府)를 서경(西京)으로 승격시키고, 제국의 이궁(離宮, 행궁)으로 건설한 궁이다.

정전인 태극전과, 편전인 지덕전(至德殿) 황태자가 사용하는 중화전(重華殿)이 중심 건물이다. 태극전은 단층건물이지만 건물 앞에 높은 기단인 월대(月臺)가 있었고, 내부에는 삼면으로 오르는 당가를 설치해 현재 덕수궁 중화전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고종과 순종이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고종의 어진(御眞, 왕의 초상화)과 순종의 예진(睿眞, 왕세자 초상화)을 봉안해 황궁으로서의 위엄과 격식을 갖춘 당당한 궁궐이었다.

고종이 2개의 수도를 건설해 황제국으로서의 위엄을 확고히 하고, 북방외교(러시아)를 통해 자주독립의 꿈을 실현하려 건설했지만, 이후 일제강점기에 '평양 자혜의원(平壤慈惠醫院)'으로 바뀌었다.

일제가 설계한 '평양 자혜의원 신영공사설계도(平壤慈惠醫院新營工事設計圖)'에 따르면, 황제의 어좌가 있던 태극전은 병원의 회의실과 연구실, 도서실 등으로 사용됐고, 태극전 뒤편에 있는 지덕전(至德殿)은 전염병실로, 지덕전의 오른편에 있는 중화전은 환자 대기실과 이비인후과로 사용됐다.

이번 전시는 풍경궁의 역사와 내부를 자세히 살펴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와 관련한 더 자세한 사항은 덕수궁관리소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대한제국 황궁의 건축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격동기에도 자주독립의 의지를 잃지 않았던 대한제국의 역사적 가치를 돌아보고 그 시대의 한계와 남겨진 과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뜻깊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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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