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성범죄물 제작 공소시효 폐지…아동 성착취물 구매만 해도 처벌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 심의·확정…미성년자 의제강간 기준 연령 16세로 상향

앞으로는 성범죄물의 제작행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등 중대범죄로 간주하고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의 경우에는 구매만 하더라도 처벌을 받는다.

폭행·협박이 인정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는 미성년자 의제강간 기준 연령이 만 13세에서 만 16세로 상향되고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로 벌금형을 받으면 학교나 어린이집에 취업할 수 없게 된다.


정부는 23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관계부처 합동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심의·확정했다.

이는 최근 텔레그램을 이용한 n번방, 박사방 사건 등 온라인상에서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하고 피해자 중에 미성년자가 다수 포함돼 있는 등 악질적 범죄 수법이 많은 국민들의 염려와 공분을 사고 있는 상황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국무조정실과 교육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법무부·국방부·행안부·여가부·방통위·경찰청 등 9개 부처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합동 TF(태스크포스) 논의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 전반에 대한 종합 대책을 마련했다.

이번 대책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목표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 확립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강화 ▲처벌 및 보호의 사각지대 해소 ▲중대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 확산 등 4대 추진전략을 설정했다. 또 이의 시행을 위해 4대 분야, 17개 중과제 및 41개 세부과제를 마련했다.

우선 정부는 성범죄물을 찾아보는 수요행위도 범죄라는 경각심 고취를 위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행위에 대한 형량을 상향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착취물에 대해서만 소지죄로 처벌이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성인 대상 성범죄물을 소지하는 경우도 처벌조항을 신설, 처벌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방침이다.

또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구매죄를 신설해 소지하지 않고 구매만 했더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학교·어린이집 등 취업제한 대상에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로 벌금형을 받은 사람을 추가해 이 같은 기관에는 취업할 수 없게 한다.

특히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판매 행위에 대한 형량의 하한을 설정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고 SNS·인터넷 등을 통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광고해도 처벌하기로 했다.

성범죄물 제작 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범죄의 중대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형량이 낮다는 지적이 있었던 만큼 앞으로는 중대범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정형량을 상향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번 n번방 사건 등에서 미성년 피해자가 다수 발생하는 등 미성년자 보호공백이 드러남에 따라 보호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의제강간 기준 연령을 16세 미만으로 상향하기로 했다.

미국(16∼18세), 영국(16세), 독일(14세) 등 외국과 비교해 미성년자 의제강간죄가 적용되는 기준 연령이 낮아 미성년자 보호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어온 데 따른 것이다.

또 예비·음모죄를 처벌하는 살인 등과 마찬가지로 합동강간, 미성년자 강간도 중대범죄로 취급해 실제 범행까지 이르지 않고 준비하거나 모의만 해도 예비·음모죄로 처벌하도록 한다.

아동·청소년을 유인, 길들여 동의한 것처럼 가장해 성적으로 착취하는 온라인 그루밍 처벌도 신설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아동·청소년에게 성적 영상물이나 사진을 요구하고 이후 유포 협박과 만남 요구 등의 일련의 단계를 처벌할 수 있게 된다.

기업화되고 수익구조화 되는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범죄수익 환수도 대폭 강화한다.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기 전이라도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는 ‘독립몰수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검사가 기소 절차 없이 법원에 몰수나 추징 만을 별도로 청구하면, 법원이 이를 결정하는 제도다.

범행기간 중 취득한 재산은 범죄수익으로 추정하는 규정도 신설해 범죄수익을 원천봉쇄할 방침이다.

아울러 디지털 성범죄 관련 수사에 현재 마약 수사에 활용하고 있는 ‘잠입수사’ 기법을 도입한다.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이 갈수록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만큼 수사관이 미성년자 등으로 위장해 수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수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즉시 시행하되 잠입수사 과정에서의 수사관 보호와 재판 과정에서의 증거능력 등을 위해 법률에도 근거 조항을 마련할 계획이다.

n번방 사건 등에서도 문제가 됐던 사회복무요원의 행정기관 내 개인정보 취급을 전면 금지하고 복무 중 정보유출 등의 경우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신상공개도 확대, 사안이 중한 피의자는 수사단계서부터 신상을 적극 공개하기로 했다.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의 경우 아동·청소년 강간범 등 성폭력범으로 한정되던 신상 공개 대상에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판매자도 추가하기로 했다.

온라인 상에서 유통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물을 신고한 뒤 신고 당한 사람이 기소되거나 기소유예처분을 받으면 포상금을 지급받도록 하는 ‘신고포상금제’도 시행하기로 했다.

아울러 인터넷 사업자의 책임도 강화, 발견 시 바로 삭제해야 할 성범죄물이 이전에는 불법촬영물로 국한돼 있었지만 이를 디지털 성범죄물 전반으로 확대한다.

유통방지를 위한 삭제·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의무가 웹하드사업자에만 적용되던 것을 모든 사업자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위반시 제재수단으로 징벌적 과징금제를 도입한다.

피해자 지원 대책도 내실화해 여가부 산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의 기능을 강화, 삭제지원, 상시 상담, 수사지원 및 2·3차 유포에 대한 추적 삭제 지원 등 24시간 원스톱 지원체계를 가동한다.

특히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24시간이 걸리는 삭제 절차를 단축, ‘선삭제, 후심의’ 절차를 도입해 보다 빠른 삭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필요한 경우 처리 기간을 기존 3개월 이내에서 3주 이내로 단축한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를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간주하고 끝까지 뿌리 뽑는다는 자세로 온 역량을 모아 철저히 대응, 국민 여러분이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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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기자 다른기사보기